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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가쓰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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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다 가쓰히코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이자 야구 지도자이다. 도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여 포수로 활약했으며, 1992년에는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팀을 리그 2위로 이끌었다. 이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2005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전향하여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오릭스 버펄로스, 한신 타이거스 등에서 배터리 코치를 역임했으며, 2022년부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군 배터리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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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가쓰히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야마다 가쓰히코
원어 이름(일본어)
로마자 표기Katsuhiko Yamada
출생일1969년 7월 2일
출생지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쓰타구
포지션포수 / 코치
투구우투
타석우타
데뷔1989년 10월 15일
마지막 경기2005년 4월 5일
드래프트1987년 3순위
등번호72
오릭스 코치 시절의 야마다 가쓰히코 (2011년 9월 13일, 홋토못토 필드 고베)
선수 경력
선수한신 타이거스 (–)
닛폰햄 파이터스/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
코치 경력
코치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
오릭스 버펄로스 (–)
한신 타이거스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현재)
기록
타율.205
안타360
홈런21
타점130
도루3

2. 선수 경력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한 야마다 가쓰히코는 1992년 주전 포수로 활약하며 팀을 리그 2위로 이끌었지만, 이후 세키카와 고이치, 야노 아키히로 등에게 밀려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노무라 가쓰야 감독으로부터 리드에 대한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성실함은 인정받았다.[1] 2002년 시즌 후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 2003년에는 40경기에 출전하며 존재감을 보였으나 부상과 다카하시 신지, 나카지마 사토시 등의 존재로 출전 기회가 줄어 2005년 은퇴했다.

2. 1. 한신 타이거스 시절

도호 고등학교 시절 통산 24개의 홈런을 기록, 1987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3순위 지명을 받고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고졸 출신이면서도 서서히 포수로서의 실력을 쌓아갔으며 프로 5년째인 1992년에는 114경기에 출전해 주전 포수로서 투수진을 리드하였다. 1992년 당시 한신의 팀 평균 자책점은 2.90으로, 이는 2위로 올라선 최대 요인이었다.

이대로 주전 포수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세키카와 고이치, 야노 아키히로 등의 활약과 자신의 침체, 그리고 약한 타격이 겹쳐 1992년을 제외하고는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이 없었다. 수비에서도 캐칭에 불안정함이 보였고, 리드할 때도 상대가 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같은 공을 계속 요구하는 패턴과[1] 치밀한 제구력이 없는 투수에게 아슬아슬한 코스를 요구하는 등 투수에게 맞춘 리드를 하지 못하는 면이 보여 노무라 가쓰야 감독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야마다의 성격에 대한 성실함은 인정받아, 후에 출간된 노무라의 저서에도 야마다와 관련된 내용이 남아있다.

1996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 도중 후루타 아쓰야의 타석에서 시마타 데쓰야가 빈볼성 투구를 3개 연속으로 던져 이에 격분한 후루타를 야마다가 직접 나서서 저지하려다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에는 갑자기 타격폼을 개조하면서 규정 타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3할 대 타율을 기록했고, 이듬해인 2001년에도 안정된 타율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미 주전 포수로서의 지위를 확보한 야노를 따라잡기에는 부족했다. 같은 시기에 뚜렷한 성과를 낸 이가와 게이의 전용 포수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2년 시즌 종료 후 시모야나기 쓰요시, 나카무라 유타카와의 맞트레이드로 다테 마사시와 함께 닛폰햄 파이터스에 이적했다.

2. 2. 닛폰햄 파이터스 시절

2002년 시즌 종료 후 시모야나기 쓰요시, 나카무라 유타카와의 맞트레이드로 다테 마사시와 함께 닛폰햄 파이터스에 이적했다. 이듬해 2003년에는 40경기에 출전하여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오른쪽 팔꿈치 부상의 영향으로 젊은 선수였던 다카하시 신지의 활약과 베테랑 포수인 나카지마 사토시의 존재도 있어 2004년에는 3경기에만 출전했고 2005년에는 1경기에 출전하는 데에만 그쳤다.[1] 2005년 시즌 종료 후 현역 생활을 은퇴했다.

그 전의 소속팀인 한신 타이거스시절에는, 1996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 도중 후루타 아쓰야의 타석에서 시마타 데쓰야가 빈볼성 투구를 3개 연속으로 던져 이에 격분한 후루타를 야마다가 직접 나서서 저지하려다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에 돌연 타격폼을 개조하면서 규정 타석에는 채우지 못했지만 타율은 3할 대를 기록했고 이듬해 2001년에도 안정된 타율을 남겼다. 그러나 이미 주전 포수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던 야노를 따라잡기에는 미흡했다. 같은 시기에 뚜렷한 성과를 나타낸 이가와 게이의 전용 포수로서 출전한 적이 많았다.

3. 지도자 경력

노무라가 감독을 맡고 있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배터리 코치로 발탁되어 2010년까지 맡았다. 그 후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오릭스 버펄로스의 1군 배터리 코치를 역임했고,[2] 2013년부터는 한신의 1군 배터리 코치로 발탁되어 2018년까지 있었다. 2019년엔 한신 타이거스 2군 배터리 코치를 하다가 2021년 시즌 끝나고 신조 쓰요시 감독 취임에 따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1군 배터리 코치로 발탁되었다.

4. 상세 정보

도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7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3순위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프로 5년 차인 1992년에는 114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포수로 활약, 팀 평균 자책점을 2.90으로 낮추는 데 기여했다.[1] 그러나 세키카와 고이치, 야노 아키히로 등에 밀려 주전 자리를 잃었고, 수비에서도 약점을 보이며 노무라 가쓰야 감독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다.

2000년 타격폼을 개조하여 타율 3할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이미 주전 포수는 야노 아키히로였다. 2002년 시즌 후 시모야나기 쓰요시, 나카무라 유타카와의 맞트레이드로 다테 마사시와 함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로 이적했다. 2003년에는 40경기에 출전했으나, 오른쪽 팔꿈치 부상과 다카하시 신지, 나카지마 사토시 등의 활약으로 2005년 시즌 후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오릭스 버펄로스, 한신 타이거스에서 배터리 코치를 역임했고, 2021년 시즌 후 신조 쓰요시 감독의 취임에 따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군 배터리 코치로 발탁되었다.


  • 첫 출장 : 1989년 10월 15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25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 첫 선발 출장 : 1991년 6월 23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3차전(삿포로 시 마루야마 구장), 8번·포수로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타점 : 1991년 6월 30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6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 첫 홈런 : 1991년 7월 2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9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 첫 도루 : 1994년 6월 5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0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연도등번호
1988년 ~ 1991년61
1992년, 2005년35
1993년 ~ 2002년27
2003년 ~ 2004년24
2006년 ~ 2010년70
2011년 ~ 2012년, 2022년 ~72
2013년 ~ 2021년82


4. 1. 출신 학교

도호 고등학교

4. 2. 선수 경력

도호 고등학교 시절 통산 24개의 홈런을 기록, 1987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회의에서 3순위 지명을 받고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고졸 출신이면서도 서서히 포수로서의 실력을 쌓아 프로 5년째인 1992년에는 114경기에 출전했고 주전 포수로서 투수진을 리드하였다. 1992년 당시 한신의 팀 평균 자책점은 2.90으로, 이는 2위로 올라선 최대 요인이었다.

이대로 주전 포수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고 생각되었지만 세키카와 고이치야노 아키히로 등의 활약에 의해 자신도 침체되었고, 힘이 약한 타격도 화근이 되어 1992년을 제외하고는 100경기 이상을 출전한 시즌은 없었다. 수비면에서도 캐칭에 불안정함이 보여, 리드할 때도 상대가 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같은 공을 계속 요구하는 한가지 패턴과[1] 치밀한 제구력이 없는 투수에게 아슬아슬한 코스를 요구하는 등 투수에게 맞춘 리드를 할 수 없는 면도 보여져 노무라 가쓰야 감독으로부터 혹평을 받기도 했다. 다만 야마다의 성격에 대해 성실함은 인정하고 있어 후에 출간된 노무라의 저서에도 야마다와 관련된 내용이 남겨져 있다.

1996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 도중 후루타 아쓰야의 타석에서 시마타 데쓰야가 빈볼성 투구를 3개 연속으로 던져 이에 격분한 후루타를 야마다가 직접 나서서 저지하려다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에 돌연 타격폼을 개조하면서 규정 타석에는 채우지 못했지만 타율은 3할 대를 기록했고, 이듬해 2001년에도 안정된 타율을 남겼다. 그러나 이미 주전 포수로서의 지위를 확보했던 야노를 따라잡기에는 미흡했다. 같은 시기에 뚜렷한 성과를 나타낸 이가와 게이의 전용 포수로서 출전한 적이 많았다.

2002년 시즌 종료 후 시모야나기 쓰요시, 나카무라 유타카와의 맞트레이드로 다테 마사시와 함께 닛폰햄 파이터스에 이적, 이듬해 2003년에는 40경기에 출전하여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오른쪽 팔꿈치 부상의 영향으로 젊은 선수였던 다카하시 신지의 활약과 베테랑 포수인 나카지마 사토시의 존재도 있어 2004년에는 3경기에만 출전했고, 2005년에는 1경기에 출전하는 데에만 그쳤다. 2005년 시즌 종료 후 현역 생활을 은퇴했다.

4. 3. 지도자 경력

닛폰햄 구단 측의 2군 배터리 코치 요청을 고사하고, 한신 시절 감독이었던 노무라 가쓰야가 감독을 맡고 있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배터리 코치로 2010년까지 활동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오릭스 버펄로스 1군 배터리 코치,[2] 2013년부터 2018년까지 한신 타이거스 1군 배터리 코치를 역임했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는 한신 타이거스 2군 배터리 코치를 맡았고, 2021년 시즌 후 신조 쓰요시 감독 취임에 따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 1군 배터리 코치로 발탁되었다.

연도소속팀직책
2006년 ~ 2010년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배터리 코치
2011년 ~ 2012년오릭스 버펄로스1군 배터리 코치
2013년 ~ 2018년한신 타이거스1군 배터리 코치
2019년 ~ 2021년한신 타이거스2군 배터리 코치
2022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1군 배터리 코치


4. 4. 개인 기록


  • 첫 출장 : 1989년 10월 15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25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7회말에 다카무라 요스케의 대타로서 출장
  • 첫 선발 출장 : 1991년 6월 23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3차전(삿포로 시 마루야마 구장), 8번·포수로서 선발 출장
  • 첫 안타·첫 타점 : 1991년 6월 30일, 대 야쿠르트 스왈로스 16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8회말에 가나자와 쓰기오로부터 기록
  • 첫 홈런 : 1991년 7월 2일, 대 요코하마 다이요 웨일스 9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5회말에 사이토 아키오로부터 솔로 홈런 기록
  • 첫 도루 : 1994년 6월 5일, 대 주니치 드래건스 10차전(한신 고시엔 구장), 8회말에 2루 안착(투수 : 고지마 히로무, 포수 : 야노 아키히로)

4. 5. 등번호

연도등번호
1988년 ~ 1991년61
1992년, 2005년35
1993년 ~ 2002년27
2003년 ~ 2004년24
2006년 ~ 2010년70
2011년 ~ 2012년, 2022년 ~72
2013년 ~ 2021년82


참조

[1] 문서 특히 야마다 자신이 약점으로 여겨졌던 바깥쪽 슬라이더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2] 웹사이트 コーチ就任のお知らせ http://www.buffaloes[...]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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